[우리 곁의 히어로]10명 살린 두드림…상처 딛고 영주권 땄다

2021-12-29 15



오늘도 우리 곁의 용감한 이웃들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.

지난해 초, 불이 난 건물에 뛰어들어 주민들을 구한 카자흐스탄인 알리, 기억하십니까?

주민 10명의 목숨을 구했지만, 불법 체류자 신분이 탄로나면서 강제 추방될 위기에 처했었습니다.

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, 강경모 기자가 만나봤습니다.

[리포트]
강원도 양양의 한 원룸 건물에서 불이 난 건 지난해 3월 23일 밤이었습니다.

한달간 진행된 조사에서도 정확한 원인을 밝히지 못한 화재.

50대 여성 1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을 입은 아찔한 상황에서 추가 인명피해를 막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.

자신이 사는 원룸에 불이 난 걸 목격하고, 일일이 방문을 두드려 주민 10명을 대피시킨 카자흐스탄인 29살 알리 씨입니다.

[알리 / 카자흐스탄 이주 노동자(지난해 4월)]
"그냥 사람들을 살려주고 싶은 생각 뿐이었고, 다른 건 없었습니다."

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50대 여성을 구하기 위해 가스 배관을 타고 2층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가,

본인도 팔과 등에 2도 화상을 입었습니다.

"불이 났던 원룸 건물입니다.

지금은 복구공사가 마무리 돼 당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데요, 하지만 알리 씨의 선행 만큼은 주민들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습니다."

[문귀길 / 인근 주민]
"지금 누가 거기로 올라가겠어요. 자기가 타 죽을 판인데 떨어져도 죽을 판인데… 대단한 용기를 가지고 있다고 봐요."

[김대혁 / 강원 양양소방서 의용소방대 연합회장]
"(알리) 얼굴에 상처가 나서 피가 났고 맨발이었고, 옷은 찢어지고 다 젖어 있었습니다."

그런데 사고 이후 그에겐 몸에 남은 상처보다 더 큰 걱정이 생겼습니다.

2017년 말 1개월짜리 관광비자로 입국한, 불법체류자 신분이었다는 사실이 들통난 겁니다.

[탁정은 / 강원 양양군 복지정책과 주무관]
"자기 몸을 다치면서까지 남을 구했지만, (알리 씨 입장에선) 쫓겨나야 된다는 생각이 먼저 들잖아요. 치료비도 많이 나왔고…"

알리 씨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면서 온정의 손길이 이어졌고, 지난해 7월, 정부가 그를 의상자로 선정한데 이어 5개월 뒤엔
영주권을 취득했습니다. 

[알리 / 카자흐스탄 이주노동자]
"울었어요. 영주권 나올지 안 나올지 전혀 몰랐어요. (카자흐스탄에 있는) 엄마, 아버지도 많이 울었어요. 너무 많이 울었어요."

지금은 인천 남동공단의 한 업체에서 목수로 일하고 있는 알리 씨.

카자흐스탄에 남겨두고 온 부인과 두 자녀를 데려오는 게 꿈입니다.

[알리 / 카자흐스탄 이주노동자]
"우리나라에서 비자를 안 주고 있어요. 지금 코로나19 때문에… 조금 이따가 가족들도 데리고 올게요."

같은 상황을 맞딱드린다면 또다시 불길 속으로 뛰어들 수 있을지를 묻는 질문에 그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.

[알리 / 카자흐스탄 이주노동자]
"사람을 구하기 위해 불 안에 들어갈 겁니다. 도와주신 분들한테 더 감사합니다."

채널A 뉴스 강경모입니다.

PD: 윤순용
그래픽: 윤승희 이연제


강경모 기자 kkm@donga.com